소식 故 입암 이도천 선도사 약력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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⦾약력보고 (통일열사 고(故) 입암 이도천(立菴 李道天) 선도사)
●.포덕 49년(1908) 2월 2일 함경남도 함주군 삼평면 송호리 출생
●.포덕 68년(1927)에 함흥농업학교를
●.포덕 70년(1930)에 수원농업전문학교를 졸업
4월 5일 창도 70주년(1930)을 맞아 천도교에 입교
●.포덕 79년(1938)부터는 함흥정미소를 운영하면서 교회사업에 진력
1945년 해방 후 함흥청우당 선전부장에 선임
●.포덕 87년(1946)에는 함흥 종리원장에 피선
●.포덕 89년(1948)에는 청우당 남북연락책임자로 활약하던 중 내무서에 체포 되어 3년동안 영어생활 (내무서에 체포되었을 때 심한 고문 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저녁에는 목이 마르니 물을 달라고하 여 이를 숨겨 놓았다가 저녁 기도식에 청수를 모시기도 했다)
●.포덕 91년(1950) 6⦁25 한국전쟁 시 10월 국군이 북진하자 미8군 정보과에 복무 11월 흥남철수와 동시에 월남, 부산에 거주.
●.포덕 93년(1952) 9월에 부산시 좌천 동전교실을 창설.
●.포덕 96년(1955) 10월에 강원도 홍천군 동막리로 이주하여 정착(마을이장과 서면 ‘한서중학교’에서 교편생활, 이 해 반공포로로 석방된 둘째 아들 석찬 군을 찾고 감격적인 상봉)
●.포덕 109년(1968)에 춘천으로 이주
●.포덕 117년(1976)에 ‘춘천교구장’에 선임되어 교구발전에 헌신.
●.포덕 119년(1978) 8월 5일 임진강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아래에서 통일을 염 원하는 유서를 남기고 머리에는 삼층관을 쓰고 단정히 도 복을 입은채 통일을 염원하며 분신 순도하시다.
(순도비문)
“오천년을 하나같이 살아온 내 조국, 저 파란 하늘,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, 기름진 들판에 무르익은 오곡들, 산 좋고 물 맑은 화려한 이 강산이 어쩌다 두동강이 되어 정성⦁공경⦁믿음으로 얽히고 설킨 부모형제, 오가지 못하는 이 서러움. 한 많은 38선에 내 한몸 불살라서 궁을 꽃을 피우나니 겨레여, 한 덩어리 궁을로 모이소서"
사단법인 동학민족통일회 수석공동의장 최용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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